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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그들은 왜 SNS에 무례한 글을 남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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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여러 사람은 개인이 타인을 향한 평가를 공공연하게 볼 수 있는 공간에 직접 표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좀 더 분명히 얘기하면 자칭 평가인들이 피평가인이 본인들에 대한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는 SNS에 무례한 댓글 혹은 게시물을 작성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필자는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을 한심하게 여기며 상종하고 하고 싶지 않다.

참고로 본인은 주로 유튜브, 인스타그램, X(구 트위터) 사용자이며 해당 SNS 위주로 얘기를 하게 될 것 같다. 현 상태에서 거부감이 드는 사례들을 하나씩 떠올려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 사례는 인스타그램에 본인의 신원이 있는 계정을 사용하여 타인의 게시물에 타인을 비방하는 댓글을 작성하는 경우이다. 일단 필자가 경험한 인스타그램은 오프라인에서 만난 누군가와 연을 잇고 싶다면 본인의 계정을 공유하여 맞팔로우를 하는 것이 흔하다. 이때 팔로우하는 계정은 계정주의 이름, 성별, 출신을 확인할 수 있고, 그 사람이 올린 게시물, 스토리, 더 나아가 좋아요와 댓글까지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정보들로 그 계정주의 취향, 행적,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이렇기에 필자는 사회적 지위와 직결되는 SNS라고 생각이 든다. 해당 계정에서 본인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댓글을 작성한다면 나는 이 자들을 무식하다고 평가를 할 수 밖에 없다.

 

 두 번째 사례는 트위터에서 어떤 계정이 올린 글에 타 계정이 인용알티를 하며 무례한 첨언을 하는 것이다. 정치적 발언 말고도 일상적인 얘기에서도 일어난다. 필자가 파악한 트위터는 텍스트 위주의 SNS이다. 사진, 동영상, 음성 등이 업로드되지만 텍스트 위주이기에 트윗을 하거나 다른 트윗을 인용알티를 하며 본인이 적고 싶은 생각을 작성할 수 있다. 이러기에 한 게시물에 제한된 글자 수를 적을 수 있지만 게시물을 연속적으로 이어 한 주제에 대해 얘기하는 타래라던가, 어떤 트윗을 A계정이 인용알티를 하고, 이걸 B계정이 인용알티를 하고, 반복적으로 인용알티를 하여 맥락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또한 대부분 익명 계정을 사용하며 연예인, 애니 등 다양한 분야의 덕질을 하고, 일기장처럼 사용된다. 특히 익명성이 있기에 필터링없이 말하는 사람이 많다.

 

 결론적으로 필자가 앞선 두 사례를 통해 던지고 싶은 질문은 "그들은 왜 SNS에 무례한 글을 남기는가."이다.

 

 이 질문에 대해 좀 더 고찰을 해보겠다. 필자가 생각한 답변은 이러한 글을 써도 결과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겠지’, ‘타인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고 옳은 거지라는 생각이 주류인 거 같다. 두 답변은 다른 답변 같지만 하나로 모아진다. “대상화하는 것이 문제가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마사 누스바움(시카고대 교수)은 1995년 논문에서 ‘사람을 사물로 대하는 7가지 방식’을 제시했다.

▶도구성(목적을 위한 도구처럼 대함) ▶자율성 부정(자율성과 자기결정권이 없는 것처럼 대함) ▶비활동성(자주성과 활동성이 없는 것처럼 대함) ▶대체 가능성(다른 대상과 교환 가능한 것처럼 대함) ▶침해 가능성(해체하고, 부수고, 침입할 수 있는 것처럼 대함) ▶소유권(다른 사람이 소유하고, 매매할 수 있는 것처럼 대함) ▶주관성 부정(경험이나 느낌을 고려할 필요 없는 것처럼 대함)이다.
* 장혜수. (2020.7.8). [분수대] 대상화. 중앙일보.

 

내가 생각한 두 답변에 각각 침해가능성, 주관성 부정은 뚜렷하게 해당하는 것 같다. 이 둘을 제외한 나머지 요소들도 이 질문에 대한 추가적인 답변이 될 것 같다.

 

 이거에 대한 해결방법으로는 본인이 대상화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대상화를 하는 것이 무례하다고 생각이 들어 이러한 행동에 대해 경각심을 갖는 것이 해결방법인 거 같다. 그러나 내가 살고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얘기를 하더라도 귀 기울여 들을 사람이 없을 것 같아 절망적이다. 의식을 바꾸기 위해선 언론, 교육부터 바뀌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지만 뿌리깊은 문제라 쉽지 않을 거 같다.

 

 마지막으로 얘기하자면 나도 누군가를 대상화하고 있다. 그러나 대상화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왜냐하면 상대방을 존중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