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급진적인 진보 속에서 살고있는 인간은 기계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현재까지 인간과 기계의 큰 차이점으로 감정이 있기에 “공감”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현재 공감을 잘하고 있나? 가볍게 공감의 정의를 국어사전에서 보고 넘어가보자.
공감이란
1.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 또는 그렇게 느끼는 기분.
통용되는 정의는 이와 같다. 필자는 어떨 때에는 공감을 잘하는 거 같고, 공감을 못하는 거 같기도 하다. 그래서 솔직히 필자 스스로 공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긴 어려울 거 같다.
독자들도 그럴 것이다.
그러면 더 나아가서 공감 연구들에서 살펴본 공감의 네 가지 핵심정의는 아래와 같다.
- 인지적 공감(이해): 감정적으로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그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는 것
- 정서적 공감(감정): 상대방이 처한 상황에 적절한 감정적 반응
- 경험 시뮬레이션(공유): 인지적 공감과 정서적 공감을 넘어 상대와 비슷한 정신 상태로 들어가는 것
- 피아(彼我) 구분: 다른 사람과 나의 경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
* 참고 글, 조지선 심리학 박사/연세대학교 객원 교수
그러면 답변이 약간 달라질 거 같다. 필자는 피아 구분을 가장 잘하는 거 같고, 그다음으로 인지적 공감을 잘하는 거 같다. 하지만 정서적 공감이 잘 되지 않아 감정적 공감, 공유는 못하는 거 같다. 독자분들도 스스로 한번 생각을 해보면 좋겠다.
그러면 이 상황에서 질문을 다시 해보겠다.
당신은 공감을 하는 사람인가, 공감을 바라는 사람인가?
이분법적으로 딱 잘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질문을 하는 이유는 공감을 “하기”보다는 “받고”싶은 사람이 많은 거 같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을 때 본인이 겪은 얘기를 하며 공감받길 원하지, 공감을 해주는 걸 원치 않을 것이다. 특히 힘든 경험이라면 말이다. 그리고 어떤 가게를 갔을 때, 병원을 갔을 때, 집에서 어떤 서비스를 이용할 때 당신은 서비스 제공자가 공감을 해주길 바라지, 그 사람을 공감해줄 필요를 느끼지 않을 수 있다.
이러기에 악성 민원, 갑질, 블랙 컨슈머 등이 많이 나타나는 거 같다. 더 넓게보면 왕따, 악성 댓글도 포함될 수 있을 거 같다. 아마도 이들은 공감을 해줄 필요를 못 느끼기에 일종의 “대상화”를 하는 거 같다.
“대상화”의 정의는 마사 누스바움(시카고대 교수)은 1995년 논문에서 ‘사람을 사물로 대하는 7가지 방식’에서 살펴볼 수 있다.
▶도구성(목적을 위한 도구처럼 대함) ▶자율성 부정(자율성과 자기결정권이 없는 것처럼 대함) ▶비활동성(자주성과 활동성이 없는 것처럼 대함) ▶대체 가능성(다른 대상과 교환 가능한 것처럼 대함) ▶침해 가능성(해체하고, 부수고, 침입할 수 있는 것처럼 대함) ▶소유권(다른 사람이 소유하고, 매매할 수 있는 것처럼 대함) ▶주관성 부정(경험이나 느낌을 고려할 필요 없는 것처럼 대함)이다.
* 장혜수. (2020.7.7). [분수대] 대상화. 중앙일보.
독자가 직접 겪은 경험 혹은 기사들을 봤을 때 공감을 하지 못해 결국에는 피해를 주는 사람의 사고방식이 대상화의 7가지 방식에 거의 다 해당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공감을 잘하는 대화형 인공지능과 대화를 하는 것이 오히려 좋을 수 있다. 대표적인 대화형 인공지능에는 ChatGPT가 있다. 말 그대로 대화형 인공지능, 사람이 아니라 기계라고 생각이 되기에 이용자는 공감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대화형 인공지능은 이용자의 기분, 요구를 서슴없이 받아주기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대상화를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좋겠지만 이면이 있다.
많은 이들이 사용하고 있는 대화형 AI는 대규모 데이터들이 들어오기에 이용자들에게 좋은 답변을 주기 위해선 깨끗한 데이터가 필요하다. 참고로 AI 훈련에 필요한 시간의 약 80%는 깨끗한 데이터를 얻는 것에 쓰이기에 아주 중요한 작업이다. 사람이 직접 컴퓨터가 인식하고 학습할 수 있도록 데이터에 이름을 다는 '데이터 라벨링(주석)'이나 온라인에 올라오는 사진이나 영상이 윤리 규정에 적합한지 검열하는 '콘텐츠 검수' 작업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데이터 노동’은 일종의 단순노동이기에 주로 인건비가 싼 하청업체가 담당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살, 고문, 성폭행 영상 등을 거의 매일 보고 시간당 할당량이 있기에 쉬지 않고 일정한 속도로 일한 사례가 있다.
(참고: 한국일보, 송옥진, 2025.06.01, 인간처럼 답하는 AI 뒤엔…기계처럼 일하는 '시급 1달러' 인간이 있다)
결과적으로 인간 혹은 기계에게 공감을 외주화하더라도 결국엔 그 고통이 인간에게 돌아올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 인간은 공감을 받기보다도 공감 해주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해야 균형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일단 공감을 받기를 바라며 이를 더욱 남에게 표출한다면 긍정적인 감정보다 부정적인 감정만 남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 부정적인 감정이 한 개인에게만 남지 않고 타인에게 넘어가며 악감정이 사회 속에 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을 AI한테 푼다고 해도 결국에는 인간 사회 속에 또 돌게 될 것이다. 인간은 인간들끼리의 소통으로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이 사회가 나은 방향으로 가려면 공감을 해주는 사회로 나아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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